OFF-Line STORY 두번째 이야기를 나눕니다.
작년에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작년 가을은 장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경제적 필요를 어떻게 준비할지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은 시기였습니다. 이것저것 고민이 많았죠.
구 시민회관 버스 승강장 근처. 거래처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한 아저씨께서 한 어르신을 모시고 오시더니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이 분한테 000번 버스 오면 알려줘요. 도움 부탁합니다."
그 어르신은 시각 장애인이셨습니다. 그 분의 목적지는 제가 사는 곳과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버스가 오면 알려드리는 정도로 그칠까 하다가 목적지까지 함께 가야겠다는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버스가 도착하자 어르신은 저의 차비까지 먼저 계산을 해주셨습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하는 생각으로 뒤올라 탔습니다. 버스손님 중 한분이 바로 자리를 양보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먼저 말을 꺼내셨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복을 받으셔야 해요."
갑작스럽게 나온 제게는 너무나 과분한 말씀이었습니다.
"어휴.. 선생님이라니요. 저는 한참 후배인데요.."
이 대화를 시작으로 그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와 형님 모두 고학력 출신의 정치, 사업가 집안의 귀재였습니다. 그분도 서울대에 입학하게 되었고 여러 수준 높은 자격증을 취득하셨고 졸업하자 마자 00은행 특채로 취업하시고 5년동안 초고속 승진을 하셨다고 합니다.
직장 생활 5년후 아버님의 권유로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사업은 갈 수록 번창하여 직원을 2,000 명 가량 고용할 정도로 큰 기업으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던 그 시절..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면서 그 회사는 경쟁력을 잃게 되었고 결국 회사는 부도가 나게 되었습니다.
돈 많을 때는 함께 해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게 되었고 그분은 큰 실망에 빠져 자살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계기로 다시 힘을 내기로 하고 늦은 나이지만 고시를 준비했습니다. 굳은 결심으로 공부를 시작하여 1차를 합격하게 되었고 2차를 준비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지게 되었는데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오랜 기간동안 안구에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아 실명을 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고시의 꿈도 접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업도 잃고 친구도 잃고 가족도 잃고, 건강도 잃었어요."
그 분은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에 막막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한 계기가 있어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기까지 20여분, 버스는 어느 새 그분의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같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집 앞까지 모셔다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분은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건물의 명암정도는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집 골목까지 가면서 그분은 명함 한 장을 건네주셨습니다. 보통 볼 수 있는 명함 위에 점자가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계셨습니다. 한때는 자살도 시도했던 그 분은 이제는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인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기셨습니다.
"그렇게 뭐든지 할 것 같았던 그 시절..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는지....
그런데 지금은 참 마음 편해요. 정말 중요한게 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그렇게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걸어오고 싶었습니다. 그 분을 만난 것이 정말 영화같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그토록 얻고 싶어 한 것은 어쩌면 신기루와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그리고 그 때 고민하고 있었던 문제에 대해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을 그 분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저에게는 참 특별한 만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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