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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TCH/일상,단상

연탄 400장을 나르고 나서.

by sketch 2008.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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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들어 강한 바람이 불면서 피부가 어는 듯한 느낌을 받은 하루입니다.

오늘 할 일을 마무리 하고 4시경 연탄을 나르게 되었습니다. 학교의 구내식당 아주머니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셔서 남는 연탄을 쓰라고 주셨습니다. 400여장 분량의 연탄이었습니다. 동네의 연탄가게 사장님이 트럭을 가져오셔서 연탄 운반을 도와주셨습니다. 몇명의 후배들과 함께 옮긴 연탄. 400장을 옮기기가 말처럼 쉬운게 아니었습니다. 철제 바구니에 4장씩 옮기는데 2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연탄을 나르면서 몇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20여년 전에 집에서 연탄장사를 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먼저 미처 부모님의 수고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는 집집마다 연탄을 땠었고 기름보일러를 설치한 집은 부자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이야 연탄주문오면 일정량 이상 트럭으로 배달할 수 있지만 그 때는 리어카에 100장씩 실어서 끌고 다니면서 배달을 했습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수없이 오르고 내려오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에 벅찬 일인지, 또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있는지를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연탄을 때는 가정, 매장들이 늘어가는 것을 볼 때 옛 생각이 다시 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연탄은 점점 비인기품목이 되어버렸습니다. 주변에 자주 볼수 있었던 연탄 대리점이 하나 둘 씩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부모님도 연탄 대리점 일을 접으시고 다른 일을 시작하셨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연탄은 시대에 떨어진 에너지원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요즘 기름값이 오르면서 다시 연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모습을 볼 때 세상살이는 모르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 살지도 않았지만요.)

연탄 나르는 일에 직접 나서서 쌓아주신 사장님을 보면서 몇 십년동안 연탄 대리점 일을 계속해오신 이 분이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에 창고에 제가 연탄을 쌓는 것을 보신 사장님은 불안해 보이셨는지 직접 쌓겠다고 하시며 400여장을 직접 쌓으셨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한 가지 일을 지켜오신 그 분이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직접 안전하게 쌓아주신 것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연탄 대리점을 하시면서 부모님은 동네 많은 분들과 관계를 맺고 지내셨습니다. 형이 군대를 마치고 복학 시점에서 두명의 등록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을 때 동네의 한 할머니가 어느 날 조용히 찾아와 모아놓은 200만원을 건네주고 가셨습니다. 얼마 전 부터 뭔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모아놓으셨다는 돈이었습니다. 그걸로 한 학기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 되었고 부모님은 다음 반년동안 벌으신 돈으로 다시 할머니께 돌려드렸습니다.


연탄 400장 나르는 것을 마친 후.. 평소에 안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조금은 뻐근한 느낌이 듭니다. 찬바람이 불어와서 손발이 시려왓지만 마음 한편에 옛 생각을 떠올릴 수 있어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하루입니다.
 

**목요일은 많이 춥다고 들었습니다. 모두 옷 따뜻하게 입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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